20100418 예수의 사람
[HSN] 갈 2: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죄인인 이방 사람이 아닙니다. [HSN] 갈 2: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HSN] 갈 2: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여 주심을 구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HSN] 갈 2: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HSN] 갈 2:19 나는 율법 앞에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HSN] 갈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HSN] 갈 2: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하여 주심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소위 잘나가는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최고의 바리새파인 랍비 가말리엘의 수제자였습니다. 또 그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 내에서도 극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습니다.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수석졸업생에 미국시민권을 가진, 여기저기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는 소위 잘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삶의 최고의 가치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잘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신을 구원을 받게 된다고 바울은 교육을 받았고, 믿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율법 중에 최고의 율법, 계명 중에 최고의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어느 날 예수에 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중심으로 예수를 따르는 예수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파는 예수를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라 여겼고, 예수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에는 완전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동네 출신이고 그의 직업을 알고, 그의 가족을 다 아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스스로 메시아라고 하니 황당할 수 밖에요. 사울은 이 사실에 분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예수파 당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그들을 붙잡고 체포하고 매질하고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과 8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도 예수를 메시아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하였습니다. 이를 참지 못한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졌습니다. 복음을 전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재끼고 돌을 던졌는데, 이 때 그 옷을 지키고 서 있던 청년이 사울이었습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의기양양했던 사울은 다메섹 지역에 예수파가 들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다메섹 지역의 회당에서 예수파를 색출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해도 좋다는 공문을 한 장 써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들고 다메섹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다메섹에 다 와서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즈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사울을 둘러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3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3일동안 온갖 생각에 휩싸여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의 이름으로 눈을 뜨게 할 것이라는 환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후 환상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울은 그 즉시 세례를 받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삶의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라비아 지방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인생과 신앙을 되돌아보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3년을 훈련받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으로 가서 선교사 파송을 받고 1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1차 전도여행때 방문했던 지역이 바로 갈라디아 지방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지난주에는 1장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거짓 복음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었지요. 우리의 삶에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거기에 구원이 있는 마냥 살아가는 삶을 경계하자는 것이 지난주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2장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신앙을 대변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자신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유대인이기를 버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이 사람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다른 것을 주장하고 신봉하던 사람들을 학대하고 죽이면서까지 지켜왔던 자신의 신념을 완전히 버리고, 율법의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예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사람들과 하나님께 잘보이기를 포기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사람이었던 사도 바울은 이제 죄의 형벌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이 율법을 쫓아 살았던 과거의 사울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인생, 새로운 이름 ‘바울’ 로 부활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사울이 아닌 바울로써 살아가는 삶은 예수께서 바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율법을 쫓아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남은 여생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인생을 보면서, 다른 것보다는,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을 지키는 삶, 율법을 따르는 삶’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바울은 어렸을때부터 유대교의 공자, 유대교의 부처, 유대교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존재인 랍비 가말리엘에게 철저한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400 개가 넘는 율법을 통달하였으며, 유대교에 적대하는 사람들을 벌레취급도 안하는 극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율법’ 은 신념이었습니다. 인생의 최고 가치였으며, 자존심이었고, 어쩌면 존재의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다 버렸습니다. 온전히 예수의 사람으로써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텐트를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외국인들에게 전하는 사도였지만, 텐트를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텐트를 만들어서 팔아서 그 돈으로 예수의 사람으로써 살아갔습니다. 바울에게 텐트를 만드는 일은 그의 인생에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로마시민이라는 사회적 지위도 로마 황제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예수의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바쁘게 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분주하게 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까? 여러분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대학 입시를 위해 주일예배도 빠지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취업을 위해 주일예배도 빠지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아마 여러분 주위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삶에서 얼마나 크게 되었습니까?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보았습니까? 우리 자신을 정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진지하게 우리의 인생을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무엇을 쫓아서, 어디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 본질을 파헤쳐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소망합니다. 돈의 사람, 명예의 사람, 친구관계의 사람, 욕망의 사람, 쾌락의 사람, 즐거운 인생, 행복한 삶의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심으로, 성령충만함을 경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의 사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과거에 예수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하여 삶의 본질되시는 예수를 회복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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